250521

2025. 5. 21. 02:01나만의 하염없이 넓은 쓰레기통

https://youtu.be/_BWE-XzSRZ4?si=QLI0QliYn4yrZbrp




나는 집을 먹고 자랐다.
벽지를 삼키고, 창틀을 씹고,
가족들의 말을 즙처럼 쪽쪽 빨아 삼켰다.
그제야 배가 불렀다.

아빠는 술에 녹았고,
엄마는 거울에 붙어 살았고,
동생은 연필을 베고 잤다.
나는, 아무도 없는 욕실에서 울었다.
물보다 뜨거운 건 없더라.

그날, 집이 울었다.
문지방이 갈라지고
책장이 스스로 목을 맸다.
나는 말 없이, 그걸 지켜보았다.
마치 꿈처럼, 마치 나처럼.

나는 자라지 않았다.
단지 손에 든 것들이 커졌을 뿐이다.
책 대신 흉기, 꿈 대신 계획,
그리고 집 대신 벗어날 구실.

노을 질 때마다
달이 내 이마에 차가운 총구를 겨눈다.
‘오늘도 잘 참았다’고 쓰다듬는다.
달은 위로를 가장한 감시자다.
하지만 왜인지 정말 따듯하다.

달이 떴다.
언젠가 아빠가 말했지.
“달은 너처럼 속이 비었단다.”
나는 웃었다.
“속이 비면, 대신 피가 차요.”

나는 자꾸 자라났다.
집을 삼킬 만큼 커졌고,
등뼈는 휘어갔다.
등뼈가 휘는 건 성장 때문이 아니야.
너무 오래 들고 다녔기 때문이지.

난 집보다 조용한 달을 찾아
나뭇잎 위로 기어올라갔다.
정말 달에게 갔다.
거긴 조용했고, 아무도 손톱을 깎지 않았고,
문제도 없었고,
피도 말랐고,
집도 없었어.

그래서 나는 달을 좋아해.
왜냐하면,
달은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아무 냄새도 안 나고,
아무도 살지 않으니까.
그래서, 완벽한 집이야.
나만 사는.

내 등에 지고 간 모든 것들이
결국 나만 남겨둔 채,
저 노을에 타버렸으면 좋겠어.

나는 피로 달을 물들인다.
한 겹, 두 겹,
결국 저 창백함도 나의 유산이리라